Overlaid | Observation | Ongoing | Orbit 겹쳐진 관찰이 나아가는 궤도
0과 1의 세계
글. 김여준
기억이 한 사람의 전부라고 한다면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자는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을까.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있고 없음만이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슬플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 또한 그러하다. 세계를 보이는 것만으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갖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은 고되다. 대부분이 비워진 사이의 세계에서 숱하게 자신을 가르고 또 자신이어야 하므로 고된 우리들.
채우고 싶다는 갈망이 무지함에 대한 몸부림이 된다. 그 고통을 진심으로 대할 때 작업은 그것을 젠체하지 않고 담아낸다. 어느 말간 시야가 세계 안에 텅 비어 투명하게 존재하는 이들을 포착한다. 모름을 넘어 몰라지기를, 잊혀지기를 바라는, 절실히 비워진 삶이 있다. 제 몸을 부수고 가루가 되어 그 가루를 직접 쓸어담는 사람들.
0과 1. 햇볕에 내놓은 그림은 잉크가 발라진 곳과 발라지지 않은 곳에 나뉘어 색을 낸다. 0 아니면 1. 세상의 슬픈 원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을 위해 염원하는 법.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이렇게 투박하여 얼마나 다행인가. 0 또는 1로 포착한 사이의 당신들을 보다 세밀하게 뒤쫓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기도 앞에 선 자에게도 기도 뒤에 선 자에게도 커다란 위로가 된다.
작품을 보노라면 높은 하늘에 날리는 연이 떠오른다. 위태롭고 자유롭게 올라탄 연의 실을 부여잡고 아래서 올려다본다. 채도 높은 파랑의 차가운 바람. 바람에 날린 먼지가 표면에 자잘한 흔적을 남겼다. 깨끗해보이는 유리에도 햇빛이 비치면 훑고 간 작은 흔적들이 가득하기 마련인 것처럼. 명징한 세계 안에서도 나는 기억이 내 집일지언정 전부라고 단정할 수 없다.
드러나는 역설과 눈을 맞춘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하던, 눈이 있던가 하는 자들의 눈을 찾아.
당신이 지난 이 길 위에서.
2025.2.
안녕. 안녕하세요.
글. 조영아
안녕.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넵니다. 아마도 이게 우리 첫 대화가 되겠죠. 어쩌면 마지막일수도 있고요. 어쩌면 입밖에조차 낼 수 없는 말일 수도 있겠죠. 왜냐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당신에겐 내가 없기 때문에. 나에게는 나만 있었으니까.
우리는
겨우 약간의 세포만을 공유하고 있을까요?
같은 시간의 공중에서 침이 조금 섞였을까요?
다른 시간의 발자국을 뒤따라 간 적 있을까요?
본 적 없는 얼굴을 자주 그리워해요. 그래서 피부를 통과하는 일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저 얇은 막을 넘어 그 아래 숨겨진 너의 모든 주파수를 듣고 싶어요. 몸을 드러내고 차가운 공기에 맞서는 것도 괜찮아요. 눈과 코, 입과 귀. 그마저도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실루엣만 겨우 드러난 사진을 쓰다듬어요. 우리가 얼굴을 마주 하기엔 세상은 너무 깜깜하고 소란스럽죠.
본 적 없는 형태에서 익숙한 모습을 찾아내려 노력해요. 이게 손가락, 발가락, 머리통.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까요. 망망대해의 등대가 불빛을 휘두르듯 무작위로 전파를 보냅니다. 비춰진 부분에서 겨우 반응하고 그것을 증거삼아 당신을 탐구합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요? 아무 마음도 갖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요. 내장이 있는 줄도 모르게 있다가 통증이 있어야만 존재를 깨닫는 것처럼. 내가 알고 싶었던 얼굴과 뒷모습을 그렇게 영영 몰랐으면 좋았을까요.
가끔은 운명 따위를 수긍하고 가끔은 거부합니다. 빛을 가리는 손바닥과 꾹 감아버리는 눈커풀이 그 증거입니다. 알게 되었으나 모르기로 했고 서로를 덮고 또 서로를 지웠습니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림자가 남고 마주 보지 않고 닿지 않아도 어딘가에 푸르게 붉게 검게 각인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았던 것들도 잊혀지고 무엇을 알고 싶은지, 모르고 싶은지도 빛바랜 실루엣만 겨우 남겠죠. 그것을 지울까요. 아니면 간직할까요. 여전히 대답을 모른 채 손을 뻗어 봅니다.
2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