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도래한 미래 예술
: ‘전시공간/전 시·공간/모든 시공간’의 예술

안진국 (미술비평)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지식의 고고학(Archaeology of Knowledge) (1972)에서 비연속적인 순간들의 연속이 역사라고 말했다. 우리는 역사가 어떤 진실을 향해 목적론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푸코에 의하면 ‘담론(discourse)’ 안에서 사물의 창조 및 질서와 연관된 비연속적인 순간들이 발생하고 그것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역사라는 것이다.

2017년 11월 24일, Thing Stuff Object전시를 시작으로, 햇수로 8년째를 맞은 ‘전시공간(全時空間, alltimespace)’은 비연속적인 순간들을 쌓아가며 역사를 만들고,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공간을 운영하는 박상아와 김용관은, 미래에는 현재의 생각과는 다른 형태의 예술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와 미학적이고 모두 흥미로워할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전시공간’을 오픈했다. 두 운영자는 예술가 스스로가 예술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들,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경계에 있는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 너무 개념적이고 관념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작업은 이미 다른 많은 예술공간에서 하고 있기에, 이들은 익숙하면서도 다른, 하찮아 보이면서도 의미 있는, 쓸모가 애매하지만 버리기 아까운, 창작 과정에서 발생한 부스러기(습작, 에스키스, 남은 조각 이미지 등)지만 여전히 보관하고 있는 ‘어떤 것’들을 보여주는 공간을 상상했다. 쉽게 지나치거나 버리거나 지우기에는 아쉬운 것들을 담고자 한 것이다. 전시공간(展示空間)을 ‘전시공간(全時空間)’으로 명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시공간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도 모두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한 것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전시공간’은 ‘전 시·공간’으로 표기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두 운영자는 자신들이 상상한 것들이 어떻게 나타날지, 그것들이 무엇일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규정되지 않은, 미래에 도래할 어떤 것에 대한 사유였기 때문이다.

햇수로 8년을 지내고, (이번 전시 모든 시공간의 예술까지 포함하여) 58번째 전시를 개최한 ‘전시공간’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흐릿하다. 흐릿하다는 것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지만, 다른 말로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간에 관한 소개 글에는 공간이 추구하는 혹은 전시로 선보였던 다양한 형태와 활동을 나열하고 있는데, 주목할 지점은 소개 글 끝의 괄호 안에 적힌 문장이다. “위 목록은 가역적이며 향후 변경/추가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전시공간’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이 문장을 통해 “가역적”이고, “변경”, “추가”될 수 있는, 미래에 도래할, 예술인지 예술이 아닌지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리좀(Rhizome)처럼 다채롭게 끊임없이 뻗어 나가는 ‘전시공간’을 그려보게 된다. 박상아와 김용관이 추구했던, 존재하지만 호명되지 않았던 ‘어떤 것’들은 비연속적인 순간들이 연속되는 가운데 ‘전시공간’의 성격을 만들었다. 지금의 ‘전시공간’은 두 운영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유연하고, 더 포괄적이며, 더욱 규정하기 힘든 전시공간이 되었다.

어떤 것들: 탈주체, 탈경계, 탈예술

물질에는 담론이 작용하고, 담론에는 물질이 작용한다. 이론 물리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캐런 버라드(Karen Barad)는 물질적인 것에 대해 “언제나 이미 물질적-담론적이다. 즉 물질화된다는 것(mattering)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Meeting the Universe Halfway, 2007). 쉽게 말해서 물질적인 것은 그냥 물질이라기보다는 “물질화된 것”이라는 의미다. 그 까닭은 ‘물질적’이라 불리는 것과 ‘담론’이라는 것이 구분되지만, 서로 ‘ 상호작용(interact)’하므로 서로 환원되지 않으면서 서로를 완전히 관통하기 때문이다. 버라드는 ‘내부작용(intra-action)’을 말했는데, 이 개념에 따라 물질에는 담론이, 담론에는 물질이 내부작용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버라드의 ‘내부작용’과 물질(혹은 담론)에 관해 말한 것은 ‘전시공간’에서 전시하는 ‘어떤 것’들이 담론적이기 때문이다. ‘전시공간’에서는 부수적인 것(탈주체), 예술의 어느 위치에 놓아야 할지 규정하기 힘든 것(탈경계), 예술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탈예술) 등이 전시를 채운다. 전시되는 ‘어떤 것’들은 단순히 물질이 아니다. 탈주체, 탈경계, 탈예술의 담론들이 작동하는 물질이다. 우리는 전시된 물질에서 역사적이고 인식론적인 사건의 반복 속에서 구조화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초기 설정한 운영 방향을 따라 물질적-담론적인 ‘어떤 것’들을 공간으로 끌어온 것 자체가 이미 어떤 담론이 전시에 들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첫 전시였던 Thing Stuff Object(2017. 11. 24 ~ 2018. 1. 31)는 두 공간운영자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어떤 물건’들, 즉 “예술품인 물건, 예술품이었던 물건, 예술품과 유사하나 예술품은 아닌 물건, 예술품을 만들기 위해 만든 물건, 예술품을 만들고 남은 물건, 예술품을 만들기 위한 훈련의

결과물인물건,잘못만든물건,특정한물건,필요없지만버리지않은물건,여러물건이결합한물건,물건을깎아서만든물건...”등을전시함으로써 ‘전시공간’의 지향점을 테스트했다. 이미 탈주체, 탈경계, 탈예술을 향한 담론들이 첫 전시의 물건들(물질)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담론은 흐릿했다. 하지만 거듭된 전시와 그 전시들에서 호명된 ‘어떤 것’들은 흐릿한 ‘전시공간’을 조금 더 선명하게 했고, 이 때문에 조금 더 명확한 ‘어떤 것’들을 불러왔다. 이것은 ‘전시공간’의 성격이 조금 더 선명해지고, 또다시 조금 더 명확한 ‘어떤 것’들을 불러오는 되먹임 순환(feedback loop)을 형성했다. 예를 들어 부수적인 것들의 전시는 주변인으로 존재하는 여성의 담론(며느라기 OFFLINE POPUP STORE2018. 4. 13 ~ 5. 3, Flat Hole2022. 4. 1 ~ 4. 28)과 차별받는 비주류인의 담론(천국보다 성스러운2018. 11. 8 ~ 12. 14), 독재적인 정권에 억압받는 홍콩의 시민들과 그들의 민주화 시위에 관한 담론(홍콩의 봄2019. 12. 15), 확장된 가족의 개념으로서 반려견 담론(Loving Pattern(제각각의 털) 2020. 11. 6 ~ 11. 28) 등 비주류를 향한 담론과 탈주체적 시각이 구체화하고 확장되는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물질적-담론적인 ‘어떤 것’들을 전시라는 형태로 호명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탈예술적, 탈경계적 특성도 마찬가지다. 만화와 일러스트를 전시로 불러오고(정신과 시간의 만화방 2018. 8. 17 ~ 9. 21, Digitally Fallen2019. 4. 5 ~ 5. 2, 정신과 시간의 만화방, 2호점 SIDE B2019. 7. 19 ~ 8. 11, 비명횡사 非命橫死 : 사라지는 것들 Deadly Blow2021. 3. 15 ~ 4. 17, SF괴수괴인도해백과 북쇼케이스2022. 5. 13 ~ 6. 2, From the abyss (Into the abyss)2023. 9. 15 ~ 9. 27), 물성을 지닌 책이나 책의 서사성을 시각예술 담론장으로 호명하고(천국보다 성스러운, PmBO22020. 10. 09 ~ 10. 30, 어둠에 익숙해지기를2020. 3. 20 ~ 5. 10, 텍스트 아웃라인 1부 / 2부2021. 7. 14 ~ 8. 3 / 8. 9 ~ 8. 28), 활자의 시각예술적 담론을 제시(글씨에서 활자로2020. 5. 22 ~ 6. 4)하는 등의 전시와, 예술 작업인지 아닌지 모호한 시각예술가들의 ‘어떤 것’들로 구성된 전시를 통해 시각예술 담론들을 비틀어 미래에 도래할 예술의 형태를 엿보게 한다.

특히 담론 확장의 변곡점이 된 것은 정신과 시간의 만화방천국보다 성스러운이었다. 정신과 시간의 만화방은 만화가 전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그 방식을 실험함으로써 독립만화를 그리는 만화작가들에게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정신과 시간의 만화방, 2호점 SIDE BSF괴수괴인도해백과 북쇼케이스, From the abyss (Into the abyss)등 실험적인 만화 전시가 이어졌다. 천국보다 성스러운은 SF 소설가 김보영이 쓴 5편의 엽편 소설과 소설을 토대로 일러스트레이터 변영근이 그린 10장의 그림으로 구성된 전시로, 차별받는 비주류인의 담론, 특히 페미니즘 담론이 중심을 이룬다. 이 전시는 이러한 담론뿐 아니라, 소설, 책, 일러스트가 전시로 구현된 것도 의미가 크다. ‘전시공간’은 판화공방인 ‘db Print Studio’와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데, 두 공간 운영자는 db Print Studio의 자원인 판화 및 인쇄의 강점을 활용하여 책과 출판물 관련 전시와 인쇄 부산물 제작에 관심이 컸다. (그래서 초기에 전시공책을 만들기도 했고, 현재까지 자체적으로 전시 인쇄물을 만드는 것이다.) ‘전시공간’의 로고에서 원형을 감싸고 있는 것이 책의 형상인데, 이것은 두 운영자가 처음부터 책과 출판물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려준다. 더불어 메이 콤마 쥰(May comma June) (2018. 5. 23 ~ 6. 13)과 한국판화거래소(2024. 3. 28 ~ 4. 3) 등 판화의 여러 가능성을 살펴보는 마켓을 열 수 있는 것도 db Print Studio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만화, 만화책, 일러스트, 소설, 책, 판화 등의 전시는 ‘전시공간’과 db Print Studio의 협력 모델을 보여주며, ‘전시공간’의 정체성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

46개의 세계: 먼저 도착한 미래의 아카이브

2024년 여름, 햇수로 8년을 맞이한 ‘전시공간’은 지금까지 57번의 전시를 하는 동안 이곳에서 전시했던 작가님들의 ‘어떤 것’들을 모아 모든 시공간의 예술전시를 선보인다. 이 전시는 ‘전시공간’을 거쳐 간 예술가들에게 공간의 지향점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작업이나 물건을 30 × 30 × 30 cm 크기의 택배 상자에 담아 배송받아 전시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다. 이렇게 지난 시간에 제시되었던 다양한 시선을 하나로 모음으로써 공간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또한, 이 공간을 거쳐 간 예술가들의 현재 관심사와 작업세계를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총 46명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생각하는 공간의 지향점이 모인 전시로, ‘전시공간’에 도래할 미래, 즉 미래의 정체성을 선험적으로 확인하는, 먼저 도착한 미래의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보내준 ‘어떤 것’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사물이나 입체작품’, ‘드로잉이나 회화 소품 및 사진 작업’, 그리고 ‘책자나 인쇄물, 글 관련 작업 및 실행되지 못한 전시 계획’이다. 이러한 분류를 조금 더 세분화해보면, 첫째, ‘사물이나 입체작품’에는 독특하거나 기이한 작은 사물 혹은 자연물(강정인, 김정인, 김지현, 김현석, 오제성, 유지영, 윤지원, 이서연, 이은지, 장파, 정우미, 차혜림)과 투명한 사물(류수현, 정수, 정재열, 한석경), 조각 작품의 느낌을 풍기는 입체물이나 사물(이지현, 정승, 최혜경), 그리고 기성품(김시훈, 아윤) 등이 포함된다. 둘째, ‘드로잉이나 회화 소품 및 사진 작업’은 드로잉이나 드로잉 잔해(김서연, 김현민, 임채형, 전태형, 정해민, 황원해), 회화 소품(김주눈, 수연, 이승희, 임지현, 지선경, 함성주, 홍소이, Danew), 그리고 사진이나 사진 관련 작업(구현성, 권희주, 김아름, 유창창, 최화신)으로 세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자나 인쇄물, 글 관련 작업 및 실행되지 못한 전시 계획’에는 책 작업(박정완), 글 작업(봄로야), 만화작업(고윤영, 최재훈), 출판물(원정인), 그리고 실행되지 못한 전시 계획(정고요나) 등이 있다.

‘전시공간’은 실험실이다. ‘전시공간’은 다양한 혁신적인 전시를 기획해 왔다. 예술과 비예술, 반예술을 넘나들면서 모든 시공간을 포괄하는 독창적이고 미학적인 ‘어떤 것’을 보여줬다. ‘전시공간’은 예술의 고정된 담론을 비틀면서,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도래할 미래의 예술을 미리 실험하고 있다. 우리는 ‘전시공간’에서 새로운 시공간과 새로운 예술을 경험하게 된다.